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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재직자 조건 부정한 대법...‘세아베스틸 통상임금’ 전합 예고편?
글쓴이 관리자
날짜 2022.11.24 조회수 186
재직자에게만 지급한다는 '재직자 조건'이 붙은 정기상여금이더라도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하급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퇴직할 경우 그동안 일한 만큼만 정기상여금을 계산해 지급한다는 '일할 지급 규정'도 없었지만 통상임금으로 인정된 것이다. 대법원은 그동안 재직자 조건이 있더라도 일할 지급 규정이 있다면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봤다.

이번 판결은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과도 배치된다. 특히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쟁점이 같은 세아베스틸 사건을 심리 중인 상황이라 충격이 크다. 대법원이 세아베스틸 판결을 앞두고 2013년 판결을 뒤집을 가능성을 열어뒀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대법원이 별다른 판단 없이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원심 판결을 확정했기 때문에 섣부른 추측이라는 반론도 있다.

13일 노동법률 취재를 종합하면 재직자 조건이 붙은 금융감독원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이라는 원심 판결이 확정되면서 법조계와 경영계 안팎에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세아베스틸 사건을 통해 2013년 법리를 변경할 가능성이 열려서다.

대법원 제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지난 10일 금융감독원 전ㆍ현직 근로자 1708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금융감독원 측 상고를 심리불속행으로 기각하고 원고 일부승소 판단한 원심을 확정했다. 심리불속행 기각은 본안 심리를 하지 않고 상고를 기각하는 것을 뜻한다.

"금융감독원 재직자 조건은 무효"...원심 판단 내용은?

원심인 서울고법 제1민사부(재판장 전지원)는 지난 5월 금융감독원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금융감독원은 홀수달 1일마다 기본급 100%를 정기상여금으로 지급했다. 정기상여금은 재직자에게만 지급됐다. 지급일 전에 퇴직하더라도 그동안 일한 만큼 계산해 지급하지도 않았다.

2013년 대법원 전합 판결을 기준으로 보면 금융감독원의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 아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당시 재직자 조건이 있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봤다.

통상임금에 해당하려면 소정근로의 대가로서 정기성ㆍ일률성ㆍ고정성을 갖춰야 한다. 따라서 일정 기간마다 근로의 대가로 지급되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

반면 근로자가 근로를 했는지 여부와는 관계없이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지급하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으로 볼 수 없다. 재직 중이 아니라는 이유로 지급되지 않는다면 근로의 대가로 보기 어렵고 고정성도 없어서다. 다만 재직자 조건이 있더라도 퇴직할 때 일할 지급하는 규정이 있다면 통상임금이 될 수 있다.

1심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재직자 조건이 부가된 정기상여금은 근로를 제공할 당시에 정기상여금의 지급 여부가 확정되지 않아 소정근로 대가성과 고정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2심 판단은 달랐다. 특히 재직자 조건의 효력 자체를 부정했다.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판결이다.

2심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이라고 못 박았다. 2심 재판부는 "금융감독원의 정기상여금은 단순히 복리후생적ㆍ실비변상적ㆍ은혜적 성격 또는 사기진작을 위한 금원이라거나 특정 시점의 재직에 대한 대가로 지급되는 금원으로 볼 수는 없다"며 "근로자의 입장에서는 기본급과 마찬가지로 소정근로를 제공하기만 하면 그에 대한 기본적이고 확정적인 대가로서 당연히 수령을 기대하는 임금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기상여금은 소정근로의 대가인 임금으로서 퇴직일까지 근로일수에 비례해 일할 계산해 지급돼야 하는 임금이라고 봐야 한다"며 "이와 달리 재직자 조건이 기왕에 근로를 제공했던 사람이라도 특정 지급일자에 재직하는 사람에게는 이미 제공한 근로에 상응하는 부분까지도 지급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해석되는 한 무효"라고 판단했다.

또 "(재직자 조건은) 근로제공의 대가로 당연히 지급받아야 할 임금을 사전에 포기하게 하는 것"이라며 "임금은 직접 근로자에게 전액을 지급해야 한다는 근로기준법에 반하고 근로기준법에서 정하는 근로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근로계약으로서 무효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2심이 재직자 조건을 무효로 본 이유는 이렇다. 정기상여금이 임금이라면 당연히 이를 지급해야 한다는 취지다. 재직자 조건의 유무에 따라 임금인지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임금이기 때문에 재직자 조건이 붙을 수 없다는 의미다.

금융감독원은 2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원심 판단을 그대로 확정했다. 일할 지급 규정 없이 재직자 조건만 있는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한 대법원 판단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근로자 측을 대리한 김남주 법무법인 도담 대표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과 달리 재직자 조건이 부가된 임금에 일할 규정이 없더라도 통상임금의 소정근로 대가성과 고정성을 인정한 첫 대법원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근로자 측 공동대리를 맡은 류재율 법무법인 중심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본질적으로 정기상여금의 임금성을 확인했다는 사실에 의미가 있다"며 "정기상여금을 임금으로 봤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임금지급에 대해 조건을 부가하는 것은 무효라는 법리를 확인한 판례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류 변호사는 "정기상여금의 성격 자체가 근로의 대가인 임금인 이상 일할 지급 규정이 있든 없든, 재직자 조건이 충족됐든 되지 않았든 근로기준법에 따라 임금 전액이 근로자에게 지급돼야 한다는 사실을 법원에서도 확인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융감독원은 이번 판결과 관련해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세아베스틸 전합 앞두고 긴장 '고조'...대법 판결 방향은?

법조계와 경영계는 촉각을 세우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재직자 조건 무효 여부를 다투는 세아베스틸 사건 선고를 앞두고 2013년 전합 판결을 변경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2013년 전합 판결 이후에도 정기상여금을 둘러싼 통상임금 분쟁은 잦아들지 않았다. 재직자 조건이 있는데도 통상임금성이 인정되는 하급심 판결이 잇따르기도 했다.

재직자 조건이 무효라는 하급심 판단도 있었다. 세아베스틸도 금융감독원과 마찬가지로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다투고 있다. 1심은 기존 법리에 따라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봤지만 2심은 재직자 조건 자체가 무효라고 판단했다.

세아베스틸 사건은 2019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됐다. 대법원이 재직자 조건의 유효성과 통상임금 판단 기준을 다시 들여다보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세아베스틸 판결이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성을 둘러싼 분쟁에 마침표를 찍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법원은 금융감독원 원심 판단을 확정했다. 심지어 금융감독원 2심과 세아베스틸 2심 판결의 논리는 유사한 구조다. 금융감독원 판결이 세아베스틸의 '예고편'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김남주 변호사는 "이 판결은 재직자 조건이 '이미 제공한 근로에 상응하는 부분까지도 지급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해석하는 한 무효라는 원심판결을 확정하고 있어 대법원의 후속 판결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류재율 변호사도 "대법원에서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이번 판결이 확정된 이상 향후 재직자 조건의 효력이 쟁점이 되는 여러 사건들에서도 동일한 판단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기대감을 보였다.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이번 판결을 "대형 사고"라고 표현했다. 하급심에서는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성에 관한 판단이 엇갈리긴 했지만 대법원에서는 전합 판결을 벗어나지 않는 판단이 이어졌던 상황에서 예상 밖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또 다른 대형 로펌 변호사는 "세아베스틸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한 뒤에도 유사한 취지 판결을 선고했었는데 재직자 조건이 무효라는 원심 판결에 심리불속행 기각을 내리면 전합 판결 방향을 예측할 수가 없다"면서 혼란스러워했다.

이준희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노사관계법제팀장은 "금융감독원 사건에서 대법원의 취지를 추론해보면 향후 유사한 사례에서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상의 '재직자 한정 조항'의 의미를 더욱 축소하고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해당성을 더욱 넓게 인정할 것이라는 점을 예상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경영계 입장에서 보면 이번 판결은 일종의 '경고등'이다. 2013년 전합 판결 이후 적지 않은 기업이 통상임금 분쟁을 피하기 위해 재직자 조건을 도입했다. 노무법인이나 법무법인들도 취업규칙이나 사규 관련 자문이 들어오면 재직자 조건을 마련해 리스크를 최소화하도록 권장했다. 재직자 조건의 의미가 축소되거나 무효로 판단되면 법적 분쟁이 확대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심리불속행일 뿐 확대해석 말아야"...파장 확대 경계 목소리도

이번 판결을 최소화하려는 시각도 있다. 대법원이 판단 근거를 명시한 것이 아니라 별다른 설명 없이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사건을 마무리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리불속행 기각은 대법관이 아닌 재판연구관이 사실상 결정하기도 한다. 대법관이 직접 판결을 내렸다 해도 대법원 소부의 결론이 모든 대법관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 판단과 같을 것이라고 예단하기도 어렵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심리불속행 기각이라고 해서 재직자 조건이 무효라는 것을 대법원이 인정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대법원이 향후 어떻게 판단할 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최진수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도 "실질적으로는 원심을 수긍했으니 대법원 입장이 변경될 것이라고 볼 여지가 없지는 않다"면서도 "심리불속행 기각이기 때문에 대법원의 입장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최근 판결들만 보더라도 대법원의 입장을 속단할 수 없다는 것이 최진수 변호사의 설명이다. 대법원은 최근 통상임금 분쟁을 다룬 현대중공업 사건에서도 전합 판결을 적용했다. 지난해 12월의 일이다. 대법원은 당시 "특정 시점이 되기 전에 퇴직한 근로자에게 특정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관행(재직자 조건 관행)이 있더라도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 등에 그런 관행과 다른 내용(일할 지급 규정)을 명시적으로 정하고 있다면 관행을 이유로 통상임금성을 배척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이 현대중공업 사건을 통해 명시적인 판단 근거를 제시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은 만큼 확대해석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릴 수 있다.

최진수 변호사는 "이 대목은 재직자 요건이 있다면 통상임금임이 부정된다는 법리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라며 "대법원이 재직자 조건의 존재를 엄격하게 해석하려는 것은 맞지만 재직자 조건 자체를 부정하려고 하기보다는 기존 대법원 법리가 유효하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출처 : 노동법률 이지예 기자 jyjy@elabo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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